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 인문
"폭력은 줄어들고 있다. 낙관적 미래를 위한 데이터."
인류는 진보했는가? 데이터가 들려주는 폭력의 역사, 그 거대한 반전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통해 비관의 안개를 걷고 희망의 근거를 마주하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진보를 믿지 않는 것을 지성의 증표로 여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중에서
스티븐 핑커의 이 날카로운 문장은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을 켜면 밤새 일어난 끔찍한 사건들이 활자화된 비명처럼 쏟아진다. 전쟁, 테러, 혐오 범죄, 그리고 각종 잔혹한 사건들. 이 거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마치 역사의 종말을 향해 돌진하는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승객처럼, 비관과 냉소를 지적인 태도라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핑커의 지적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절망이 과연 실체에 기반한 것인가, 아니면 미디어와 인지적 편향이 만들어낸 거대한 착시 현상은 아닌가? 이 질문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미래를 향해 어떤 발걸음을 내디딜 것인가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문제로 확장된다. ★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비극적 뉴스는 인류 폭력성의 '전부'가 아니라, 극적으로 줄어든 폭력의 '잔여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 책은 제기한다. 이 충격적인 가설은 나의 안일한 비관주의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며, 1,400페이지에 달하는 지적 여정으로 나를 이끌었다.
절망의 시대에 감히 '희망'을 논하다
우리는 왜 이토록 두꺼운 책을, 그것도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깊은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24시간 연결된 미디어는 전 세계의 비극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우리의 감정을 소진시킨다. 과거에는 알 수 없었던, 혹은 무시되었던 폭력들이 가시화되면서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집단적 비관주의는 냉소와 분열을 낳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지과학자이자 세계적인 석학인 스티븐 핑커가 등장한다. 『빈 서판』,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등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이어온 그는, 이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인류 역사 전체를 조망하는 거대한 데이터와 통계를 무기 삼아 우리의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고도 충격적이다. "인류의 폭력은 장기적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감소해왔다." 이 주장은 감상적인 낙관론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친 살인율, 전쟁 사망률, 고문, 노예제, 아동 학대 등 온갖 폭력의 데이터를 분석한 실증적 연구의 결과물이다. ★ 핑커는 감정에 호소하는 대신 데이터로 증명하며, 우리가 딛고 선 이 시대가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논증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를 넘어, 만연한 불안과 비관에 맞서는 지적인 백신이자, 이성적 희망의 근거를 제시하는 시대의 필독서라 할 수 있다.
리바이어던의 역설: 국가라는 이름의 '필요악'
"평화화 과정의 원동력은 바로 국가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폭력의 독점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중에서
핑커가 제시하는 폭력 감소의 첫 번째 거대한 동력은 바로 '국가', 즉 토마스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의 등장이다. 우리는 흔히 자연 상태의 인간을 '고귀한 야만인'으로 낭만화하고, 문명과 국가가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핑커가 제시하는 고고학적, 인류학적 데이터는 이 통념을 무참히 파괴한다. 국가가 없던 선사 시대 부족 사회의 폭력 사망률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국가들의 전쟁 사망률보다 훨씬 높았다. 사소한 모욕이나 자원 다툼이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복수의 악순환이 일상이었던 것이다.
국가는 개인들의 복수심과 폭력성을 제어하기 위해 '폭력의 독점권'을 가져간다. 경찰, 군대, 사법 시스템을 통해 사적 폭력을 금지하고 분쟁을 중재한다. 물론 국가 자체가 거대한 폭력(전쟁, 억압)을 자행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구성원들 사이의 일상적인 폭력은 극적으로 줄어든다. 중세 유럽의 살인율이 현대 유럽의 수십 배에 달했다는 통계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당시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결투나 사소한 시비로 인한 살인이 만연했지만, 중앙집권적 국가가 법과 질서를 확립하면서 이러한 폭력은 급감했다. ★ 국가는 폭력을 독점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사회 전체의 폭력을 극적으로 감소시키는 평화의 전제 조건이 된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사회의 '작은 정부' 논쟁에도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는 종종 국가의 개입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핑커의 분석에 따르면,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는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다. 오늘날 우리가 소말리아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실패한 국가'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목도하는 것은, 리바이어던이 부재할 때 인간 사회가 얼마나 쉽게 원시적인 폭력의 상태로 회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 증거다. 결국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폭력을 제어하는 사회적 시스템, 즉 국가라는 거대한 발명품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내면의 악마와 선한 천사, 그리고 '이성의 에스컬레이터'
핑커는 폭력 감소가 단순히 외부적인 제도, 즉 국가의 힘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들어 폭력을 유발하는 '내면의 악마들'(포식성, 우세 경쟁, 복수, 가학성, 이데올로기)과 이를 억제하는 '선한 천사들'(공감, 자기 통제, 도덕성, 이성)을 동시에 조명한다. 그의 철학은 인간 본성이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이분법적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인간은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내포한 존재이며, 역사는 어떤 조건에서 '선한 천사'가 '내면의 악마'를 제압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저자의 제안을 무시하고,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악하며 변하지 않는다는 비관론에만 머무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폭력을 줄이기 위한 모든 노력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교육, 민주주의, 국제 협력, 인권 신장과 같은 노력들은 어차피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본성을 이길 수 없다는 냉소주의에 빠질 것이다. 이는 결국 폭력을 용인하고 방치하는 자기 파괴적인 예언을 실현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핑커가 제시하는 가장 강력한 '선한 천사'는 바로 '이성'이다. 그는 '이성의 에스컬레이터'라는 개념을 통해, 인류가 추상적 사고와 논리적 추론 능력을 발전시키면서 폭력의 비효율성과 부도덕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성은 '나'와 '너'의 입장을 바꿔 생각하게 하고(공감의 확장), 단기적인 복수의 쾌감보다 장기적인 평화의 이익이 더 크다는 사실을 계산하게 한다(자기 통제). 계몽주의 시대에 고문과 노예제가 폐지되고, 20세기 후반 인권, 여성권, 아동권, 동물권이 신장된 '권리 혁명'은 모두 이성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공감의 범위가 점차 확장된 결과다. ★ 진보란 정해진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려는 끊임없는 과정 그 자체다. 이 책이 주는 사회적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인간의 악마성을 직시하되, 선한 천사를 일깨우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의식적으로 설계하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이성은 우리 자신을 특정 관점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데이터가 나의 비관주의를 무너뜨린 순간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꽤나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매일같이 접하는 뉴스는 세상이 점점 더 위험하고 각박해지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특히 몇 년 전, 길거리에서 벌어진 '묻지마 폭행' 사건을 영상으로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평화로운 일상이 언제든 예측 불가능한 폭력으로 깨질 수 있다는 공포는 나의 세계관을 잠식했다. 타인에 대한 불신이 싹텄고, 사회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이 깊어졌다. 이러한 생각은 나도 모르게 나의 일상적인 선택과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밤늦게 길을 걷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고, 낯선 사람의 작은 호의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곤 했다.
그런 나에게 핑커의 책은 거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나의 감상적인 공포에 맞서 차가운 데이터를 들이밀었다. 내가 본 그 끔찍한 사건이 '전체'가 아니라 극히 일부의 '예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리고 그러한 폭력의 발생 '비율'은 역사적으로 유례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수많은 그래프와 통계로 보여주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나의 막연한 불안감은 구체적인 데이터 앞에서 힘을 잃어갔다. 중세 시대의 살인율, 고대 사회의 전쟁 사망률, 근대 이전의 잔혹한 형벌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내가 지금 누리는 '안전한 일상'이 얼마나 기적적이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책을 덮은 후,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은 완전히 달라졌다. ★ 더 이상 개별적인 사건의 충격에 매몰되어 전체적인 진보의 흐름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세상의 폭력과 부조리가 모두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절망 대신 가능성을 본다. 인류가 지난 수천 년간 폭력을 줄여왔다면, 앞으로도 더 줄여나갈 수 있다는 이성적인 희망을 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희망은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에 근거한 선택이다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단순한 지식의 나열을 넘어, 우리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도록 요구하는 지적 도전이다. 이 책은 우리가 느끼는 세상과 실제 세상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폭로하며, 그 간극이 우리의 인지적 편향과 미디어 환경에 의해 어떻게 증폭되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방대한 데이터와 치밀한 논증으로 무장한 이 책은, 비관주의가 지성이 아니라 게으름의 산물일 수 있음을, 그리고 진정한 지성은 현실을 직시하고 데이터에 근거해 판단하는 용기에서 비롯됨을 역설한다.
물론 핑커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20세기의 거대한 비극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혹은 서구 중심적 시각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폭력 감소'라는 거대한 추세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의 결론에 맹목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방법론을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를 얻는 것이다. ★ 이 책은 우리에게 맹목적인 낙관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데이터에 기반한 '사실적 희망'을 선택할 수 있는 지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 책은 뉴스를 볼 때마다 세상의 종말을 떠올리는 이들,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잔혹함에 무력감을 느끼는 이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진보의 가능성을 믿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이 두꺼운 책을 완독하는 경험은,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마침내 한 줄기 빛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지적 희열과 안도감을 선사할 것이다.
【지혜의 갈무리】
책을 선택한 이유
매일 쏟아지는 비극적인 뉴스로 인해 세상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비관주의에 빠져있을 때,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를 통해 인류의 진보를 논증한다는 이 책의 도발적인 문제의식에 이끌렸다. 감상적 절망을 넘어,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희망의 근거를 찾고 싶은 지적 갈증이 이 책을 펼치게 만들었다.
저자 소개
저자 스티븐 핑커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세계적인 인지과학자이자 언어학자다. 『빈 서판』,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등 인간 본성에 대한 기념비적인 저작들을 통해 대중과 소통해왔다. 그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진화와 인지 과정의 산물이라는 관점을 견지하며, 이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는 이러한 과학적 통찰을 인류 문명사 전체로 확장하여 폭력의 역사를 분석하는 거대한 지적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추천 대상
뉴스와 미디어가 전하는 자극적인 소식에 지쳐 세상에 대한 냉소와 무력감에 빠진 분, 인류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거시적인 통찰을 얻고 싶은 분, 감정이 아닌 데이터와 이성에 기반하여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이성적 희망'의 근거를 찾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지혜의 요약
1. 인류의 역사는 통념과 달리 폭력이 장기적이고 꾸준하게 감소해 온 진보의 과정이었다.
2. 국가(리바이어던)의 등장, 상업의 발달, 여성성의 증대, 그리고 이성의 발달은 폭력을 감소시킨 핵심 동력이었다.
3. 진정한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인류가 이룩해 온 진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참고 도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저자: 스티븐 핑커 /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Whiteboard Publishing은 원서 출판사 정보가 아닐 수 있어 국내 출판사로 표기합니다)
저작권 고지 문구:
본 콘텐츠는 독자의 인사이트와 성찰을 담은 창작 에세이입니다. 원저작물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으며, 독자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감상과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원저작물의 저작권은 저자 및 출판사에 귀속되며, 본 에세이는 해당 저작물과 독립적인 2차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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